[보도자료] 한겨례_강의도 없고 교수도 없는 ‘대안대학’ 다닙니다 (22.06.13)

강의도 없고 교수도 없는 ‘대안대학’ 다닙니다

등록 :2022-06-13 20:00수정 :2022-06-14 02:35


 유럽의 미네르바 스쿨로 불리는 몬드라곤대학교의 레인 과정이 한국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사진 레인서울 제공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교육으로 일제히 전환되면서, ‘미네르바 스쿨’이 미래 교육의 대안으로 더욱 조명을 받았다. 미네르바 스쿨은 일정한 캠퍼스나 강의실이 없이 전세계 7개 도시를 돌며 온라인으로 토론식 수업을 하는 대학이다. 여기저기서 미네르바 스쿨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가운데, 한샘의 조창걸 창업주가 사재 수천억원을 출연해 ‘한국판 미네르바 스쿨’인 태재대학을 내년에 개교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대안적인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대안대학들이 있었다. 레인서울부터 지식순환협동조합,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까지 제도권 대학 교육과 확연히 차별되는 방식으로 배움을 일으키는 대학들을 소개한다.


스페인판 미네르바 스쿨, 레인서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스페인 기업 순위 7위에 해당하는 협동조합이자 세계 최대 노동자 협동조합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오히려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사회적 경제의 상징’으로 꼽히는 곳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세운 몬드라곤대학교의 레인(LEINN) 과정은 유럽의 ‘미네르바 스쿨’이라고 불리는 혁신적인 학교다.


이 몬드라곤대학교 레인 과정의 한국 캠퍼스로 불릴 수 있는 학교 ‘레인서울’이 2020년부터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레인서울’은 몬드라곤 협동조합 정신과 핀란드의 창업교육인 ‘팀 아카데미’에 바탕을 둔 교육방식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TA)를 적용해 팀기업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4년제 학사 학위 과정이다. 레인은 이 학교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리더십’ ‘기업가정신’ ‘혁신’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레인서울’ 과정을 마치게 되면 몬드라곤대학교 졸업장이자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유럽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배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다. 입학 동기들은 함께 협동조합이나 주식회사 등 법인을 설립해 이 안에서 팀 형태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창업, 비즈니스 등을 실행하며 역량을 키워나간다. 강의나 강의실도 없고 당연히 교수도 없다. 이곳의 학생들은 ‘학생’이라는 말 대신 ‘팀기업가’로 불린다. 창업과 경영을 위한 기초 지식 습득은 교양 강의 수준으로 제공되지만 주된 학습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적합하게 설계한 학습과 팀원들끼리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협의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그걸 돌이켜보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팀 코치들은 실행을 통한 학습과정 전반을 함께하면서 팀과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을 기반으로 한국 전역에서 프로젝트나 창업을 시행하고 또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을 돌면서도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원형으로 둘러앉아 회의를 하는 것은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의 기본정신이다. 사진 레인서울 제공


재학생인 음동현(21)씨는 “고등학교 때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살짝 경험하면서 관심이 있었는데 팀 창업과 경영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스페인 스타트업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일을 돕는 등 내가 주체적으로 일을 벌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가끔 놀라면서 흔치 않은 경험과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다영(20)씨는 “4년간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돈도 벌어본다는 게 마음을 움직여서 지원하게 됐다”며 “지금 법인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게 됐는데 보통 20대 초반에 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할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어떤 실패를 해도 괜찮고 안전하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유럽 학사 일정에 맞춰 매해 9월에 학기가 시작된다. 매달 온라인 입학설명회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입학 희망자 지원을 받아 면접을 거쳐 신입생을 선발한다. 면접은 팀 코치와 함께 일대일로 여러차례 치르게 되는데, 다양한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원종호 팀 코치는 “도전과제를 주고 해결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면접을 치름으로써 지원자도 이 학교의 교육방식을 체험하고 이 학교와 자신이 맞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이 교육과정과 맞지 않는 지원자들은 면접 과정에서 스스로 그만두게 되고 잘 맞는 친구들은 면접을 끝까지 치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입학을 위한 입학설명회는 7월6일과 9일에 예정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www.mta-korea.co.kr) 및 페이스북 ( www.facebook.com/leinnseoul)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안대학 지순협은 인문예술부터 자연과학까지 통섭인문교육을 지향한다. 사진 대안대학 지순협 제공


통섭인문교육의 장, 대안대학 지순협

대안대학 지순협(지식순환협동조합)은 2015년에 설립된 협동조합 형태의 1년제 대학이다. 당시 제도권 대학의 교육이 견고한 분과 학문 시스템 속에서 경쟁과 생존주의 교육으로만 내달리자 통섭인문교육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면서 설립됐다. 지금까지 2년제로 운영되다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 올해부터 1년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대학은 미래 직업으로서 연구자, 창작가, 활동가, 기획자의 역량에 주목해 이들의 역량에 뿌리가 되는 인문 소양을 집중적으로 길러낸다. 자기 질문을 발견하는 법,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사고하는 법을 배우면서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 공부-활동-창작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동료로서 성장해나가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예술인문부터 정치경제, 통합과학까지 다양한 강의를 듣고, 청년학부터 페미니즘, 생태학까지 세미나와 워크숍이 4학기 내내 촘촘히 진행된다. 공부하는 동안 더 깊은 성장을 위한 담임 멘토가 배정된다. 1년 4학기제(학기당 3개월)로 구성되어 있으며, 졸업 학기에는 1년간 공부한 내용을 종합해 자신만의 문제의식이 담긴 연구물을 제출해야 한다.


보통 입학생은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다. 공교육 출신이나 대안교육 출신도 섞여 있고, 제도권 대학을 다니다가 중단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졸업생들은 대체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나 기업체에 들어가거나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기도 한다.


이 대학 학생인 전예린(21)씨는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선배 중에서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 대학을 알게 됐다”며 “이곳의 수업들이 내가 생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은(26)씨는 “인문학이나 예술 전반에 대해서 배우는 커리큘럼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평등하고, 지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나누어지는 대학의 지향점이 마음에 와닿아서 지원하게 됐다”며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잡지도 만들어보면서 내가 궁금해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기획하고 구현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마음에 맞는 동료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매해 연말에 서류와 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뽑는다. 박두헌 사무국장은 선발 조건에 대해 “학력이나 성적, 나이 등은 보지 않으며, 우리 대학의 교육 목표나 지향점과 맞는 사람을 뽑는다”고 말했다. 6월24일까지 3학기 편입생을 모집 중이며, 누리집(www.freeuniv.net)을 참고하면 된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은 인문학적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디자인 독립학교다. 사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제공


디자인 독립학교,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대학도 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파티)은 ‘한국 타이포그라피(타이포그래피)의 거장’인 안상수 디자이너 등 여러 디자이너들이 모여 2013년 설립한 협동조합 형식의 디자인 독립학교로 창의적 직업 디자이너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종의 ‘학사’ 과정으로 볼 수 있는 4년제 과정인 ‘한배곳’ 과정과 석사에 해당하는 2년제 과정인 ‘더배곳’ 과정이 있다. 한배곳의 1∼2년 과정은 글쓰기를 비롯한 인문 이론과 역사, 타이포그라피를 바탕으로 음악, 여행, 시쓰기 등 창의 수업을 통해 인문학적 안목을 키워나가는 인문 워크숍과 실기 워크숍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3∼4년 과정은 전공을 심화하고 프로젝트를 통한 실질적인 교육과 직접 일을 기획하고 꾸리는 경험까지 나아가게 된다.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와 영국 유시에이(UCA)로 편입이 가능하고,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와 독일서적예술대학 등 다양한 외국 학교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에 준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실기 및 면접 등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누리집(www.pati.kr)을 통해 방문 신청을 하면, 교무행정팀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며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의 외관 모습. 사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제공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46850.html